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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숨, <녹음기와 두 여자>

perfectworld 2016. 10. 24. 21:48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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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형되지 않는 '마비된 기억'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. 박제된 새를 내내 끌어안고 있는 심정일까. 박제된 새를 끌어안고 밥을 먹고, 버스나 지하철에 오르고, 티브이를 보고, 잠이 들고……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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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실되었던 기억의 복구는 그렇게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. 그 어떤 냄새로부터, 소리로부터, 물건으로부터, 단어로부터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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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는 어쩌면 매순간 증언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. 눈빛으로, 표정으로, 그 어떤 기척으로, 침묵으로……. 탄식, 비명, 흐느낌, 발광, 침묵도 증언의 한 방식이므로. 무언극을 하듯 온몸으로 끊임없이 간절하게 증언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어서 증언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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침묵이 그녀에게 갑각류의 껍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. 그녀를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해주는 막 같은 것인지도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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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억이 소멸되면 그 기억을 연무처럼 감싸고 있는 감정들도 함께 소멸되는 걸까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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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.

이름은 까맣게 잊었지만 그 누군가가 소리 없이 울던 걸 기억하는 것.

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?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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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. 그 두 사람이 기억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다를 것이다. 글자를 모르는 이들이 종종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장소를, 시간을,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보아왔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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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육안으로는 감지되지 않던 빛의 다양한 빛깔이 드러나듯, 침묵 역시 프리즘 같은 것에 통과시키면 들리지 않던 말들이 들리지 않을까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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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속버스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육하원칙에 충실했던 내 질문들이 실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깨닫는다. 내 질문들은 문 할머니의 조각조각 난 기억들을 이어주기는커녕 더 낱낱으로 흩뜨려놓았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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